1. 심리학적 근거에서 보는 동물들의 기계적인 행동양식
어미 칠면조는 정말 어리석은 모습을 보입니다. 천적 관계에 있는 족제비를 오직 '칩칩' 소리를 낸다는 이유 하나로 품에 안는 행동을 하니 말이다. 자기 새끼라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천대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어미 칠면조의 모성적 본능은 '칩칩'이라는 소리 하나에 의해 마치 자동인형처럼 자동적으로 작동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을 끄는 사실은 이러한 자동화된 행동이 어미 칠면조에만 국한된 현상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동물생태학자들은 이러한 규칙적이고 맹목적이고 기계적인 행동 양식은 생물의 다양한 종(Species)에서 발견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고정 행동유형이라고 불리우는 이러한 특이한 행동은 구애, 구혼 의식이나 교미 의식 같은 복잡하게 연결된 일련의 행동에서 주로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고정 행동들은 언제나 똑같은 차례대로 그리고 변함없이 일정한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다. 마치 그러한 행동들이 동물들의 몸 안에 녹음장치처럼 저장되어, 구애에 관련된 상황이 발생하면 그에 관련된 기억이 돌아가고 모성애가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면 모성애와 관련된 녹음장치가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현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어떻게 적절한 저장장치가 활성화되느냐에 관한 문제이다. 예를 들어 동물은 누군가가 자신만의 영역을 침범하면 자기방어의 저장장치를 활성화해 격렬하게 경계하고 상대방을 위협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한바탕 전투도 불사한다. 그러나 매우 흥미로운 점은 자기방어의 저장장치를 활성화시키는 요인은 침입자의 존재 전체가 아니라, 침입자의 어떤 특정적인 '유발기제(the trigger feature)'라는 사실이다.
유발기제는 경우에 따라서 침입자의 깃털 색깔 같은 아주 미세한 부분적인 특성에 불과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동물생태학자의 실험에 의하면 수컷 참새는 자신의 영역 내에서 어쩌다가 다른 수컷 참새의 빨간 가슴털이 꽂혀 있는 진흙 덩어리를 발견하면 마치 그것이 자신의 경쟁 참새인 양 맹렬하게 공격한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의 영역 안에서라도 빨간 가슴털이 제거된 수컷 참새의 박제에 대해서는 놀랍게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슷한 결과가 블루쓰로트(bluethroat)라고 불리는 지빠귀과 종류의 새에서도 발견되고 있는데, 이 새의 자기방어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유발기제는 다른 새의 파란 가슴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발기제를 조작하면 하등 동물의 행동을 좌지우지하여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행동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고 고소해하기 전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첫째, 앞서 예시된 것과 같은 동물들의 자동화된 고정행동유형은 대부분의 경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순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오직 정상적인 새끼 칠면조만이 어미 칠면조의 모성애를 유발하는 '칩칩' 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어미 칠면조가 아무런 의심 없이 오직 '칩칩'이라는 유일한 유발기제에만 반응한다 해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과학자라는 존재가 '칩칩' 소리를 녹음하여 어미 칠면조를 놀리는 데 사용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두 번째로 우리가 이해해야 할 중요한 점은 우리 인간들도 그러한 종류의, 미리 프로그램된 저장장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그러한 저장장치들을 활성화시키는 유발기제는 경우에 따라서 우리로 하여금 전혀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마치 아라비안나이트에서 '열려라 참깨' 라는 비밀 암호에 의해 육중한 동굴의 문이 자동으로 열리듯이 적절한 유발기제가 작동되면 우리는 정해진 행동을 순서에 따라 자동으로 진행하게 된다.
2. 동물들에게서 보이는 행동양식과 동일한 인간의 기계적인 행동
동물들의 고정행동유형에 버금가는 사람들의 자동화된 행동은 사회심리학자인 랭거(Langer)와 그녀의 연구팀에 의한 실험 결과에서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다. 잘 알려진 인간 행동의 법칙 중의 하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호의를 요청할 때는 왜 지금 그것이 필요한가에 대한 이유를 반드시 제시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이유 있는 것'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랭거는 이런 평범한 사실을 도서관에서 복사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죄송합니다만, 제가 지금 다섯 장을 복사해야 하는데 먼저 복사기를 사용하면 안될까요? 왜냐하면 지금 제가 굉장히 바쁜 일이 있거든요"라는 작은 호의를 부탁하는 실험을 통해서 우리에게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요청+ 이유 제시'는 매우 효과적이어서 94%의 사람들은 이러한 요청을 쾌히 승낙하였다. 그러나 이 결과를
'이유 제시 없는 요청' 만 했을 경우인 "죄송합니다만, 제가 지금 다섯 장을 복사해야 하는데 제가 먼저 복사기를 사용하면 안될까요?"와 비교하여 보자. '이유 제시 없는 요청' 만의 경우는 겨우 60%의 승낙만을 얻고 있다.
언뜻 보기에 위의 두 경우의 가장 큰 차이점은 "왜냐하면 지금 제가 굉장히 바쁜 일이 있거든요"라는 추가 정보의 유무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랭거의 실험에서 사용된 세 번째 형태의 요청 결과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요청 상황에서 상대방의 승낙을 얻어내는 마술 언어는 추가 정보 전체가 아니라 '왜냐하면'이라는 단어 하나라는 사실이다.
랭거의 세 번째 형태의 요청은 비록 '왜냐하면'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였지만 아무런 새로운 추가 정보가 없는, 즉 '명확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은 요청'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지금 다섯 장을 복사해야 하는데 제가 먼저 복사하면 안 될까요? 왜냐하면 제가 꼭 복사를해야 하거든요"라는 요청에도 사람들의 93%가 승낙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마치 박제된 족제비에 설치된 녹음기로부터 흘러나오는 '칩칩' 소리를 가지고 어미 칠면조의 모성애를 자극하여 자동화된 행동을 도출해 낸 것처럼 '왜냐하면' 이라는 말 한마디가 요청에 대한 명확한 이유도 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랭거의 피실험자들로부터 자동적으로 승낙을 얻어내고 있는 것이다(기억하는가! '열려라 참깨' 라는 비밀 암호를!)
비록 랭거의 추후 연구 결과가 사람들이 항상 그처럼 기계적으로만 행동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혀내고 있지만(Langer, 1978), 놀라운 사실은 그러한 행동이 생각보다 훨씬 자주 발견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지배인
의 오해 때문에 가격이 갑작스럽게 2배나 오른 후에야 벌떼처럼 터키옥에 몰려 들었던 관광객들의 이상스러운 행동을 생각해 보자.
'열려라, 참깨' 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들의 행동은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대부분 부유층에 속하는 관광객들은 터키옥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구매 결정에 있어서 '비싼 것= 품질이 좋은 것'이라는 일반적 기준을, 즉 고정관념을 사용했던 것이다. 사실 많은 연구 결과가 사람들이 제품의 품질을 판단할 때 이러한 고정관념을 사용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좋은 품질의 보석을 사고 싶어 하는 관광객들은 여러 보석 중에서 가장 가격이 비싼 터키옥에 관심이 쏠렸고, 따라서 갑작스런 가격 상승은 터키옥의 매진이라는 예기치 못한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